<Shopaholic>의 ‘홀릭’한 존재

<Shopaholic>의 ‘홀릭’한 존재

 

 

조광제

 

 

 

 

“입으로 불을 호흡하는 괴물, 이 괴물은 여러 동물들로부터 가져온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뱀의 머리를 매단 꼬리를 지닌 사자의 몸을 지니고서 등뼈의 한가운데에서부터 염소의 머리가 솟구쳐 있다.” 호메로스가『일리아드』에서 불멸의 괴물인 키메라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다. 작가 최진아의 예술 세계는 바로 이러한 키메라를 닮았다. 그녀의 예술혼은 키메라처럼,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호흡한다. 공기가 유행이라면, 불은 그 유행을 가로지르는 근본적인 의미일 것이다. 키메라가 호흡하는 불이 여러 동물들의 생명을 한꺼번에 유지하듯이, 그녀가 호흡하는 예술혼의 불은 각기 그 차원이 달라 보이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다양하게 열어젖히게 한다. 키메라의 몸통을 이루는 강렬한 에너지의 동물인 사자처럼, 그녀의 <Silence of Objects> 시리즈는 사물이 어떻게 감각덩어리로 불끈거리는가를 보여준다. 키메라의 꼬리에서 검은 혀를 날름거리는 지성의 화신인 뱀처럼, 그녀의 <Reading> 시리즈는 인간 지성의 결과물인 책들을 집요하기 이를 데 없는 방식으로 파들어 내고 잘라내고 잇대고 재조립해서 글자들이 파득거리게 함으로써 언어가 어떻게 물질적으로 요동치는가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이번 전시에서 그 위력을 한껏 드러내는 <Shopaholic> 시리즈는, 키메라의 등줄기에서 솟구쳐 오른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의 동물인 염소처럼, 현대인들의 소비 욕망들과 그 욕망들을 향한 지독한 소비사회의 초상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주 내용인 <Shopaholic> 시리즈에 관해 다소 미세하게 들여다보자. 방금 개략한 것처럼, 어쩌면 주제는 비교적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갈수록 그 위세를 더해가는 거대한 소비사회의 빨판들이 어떻게 현대인들을 오로지 소비자로 만들어버리며, 그런 와중에 소비자로서의 현대인의 욕망이 어떻게 파편적으로 재편성되고 재구조화되는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더욱 세밀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작품의 형식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그의『구별짓기』에서 일반 대중들은 내용에 집착하고 이른바 엘리트 교양인들은 형식에 대한 반성에 집중한다고 함으로써 형식에의 관심이 문화자본이 작동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지만, 작가 최진아의 이번 전시 작품들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로서는 그런 비난을 염두에 두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작품의 형식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형식과 내용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했고, 매체학자인 마샬 맥루언은 매체가 곧 메시지, 즉 형식이 곧 내용이라고 했다. 이는 ‘형식’(form)의 한 어원인 ‘형상’(形相, eidos)이 본질을 지칭한다는 데서 이미 선취된 바다. 요컨대 작품의 형식을 고려치 않고서는 작품의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 미술은 그러하다.   

 

작품의 형식은 작업 기법과 직결된다. 우선 대중잡지에서 오려내어 인용하고 있는 각종 사진 이미지들과 작가가 직접 유화 물감을 활용해 그려 넣은 회화 이미지들의 병존이 눈에 띈다. 이는 팝 아트적인 기법을 원용한 것이라 할 것이다. 팝 아트의 기원으로 손꼽히는 존 해밀턴이 1950년대 말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를 만들면서 신문과 잡지에서 뜯어 낸 이미지들을 활용한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이어서 앤디 워홀이 유명 스타들의 사진을 실크 프린트의 기법으로 변형시키고 아울러 물감으로 재처리해 전대미문의 새로운 작품들을 만든 것 역시 다들 알고 있다. 

 

그런데 최진아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형식은 이 같은 팥 아트적인 기본적인 기법에 아상블라주에 의한 정크 아트의 기법이 배합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상블라주에 의한 정크 아트는 쓰다버린 입체적인 폐품들을 끌어 모아 얼기설기 구성하여 작품으로 제시한다. 이와 유사하게 최진아는 잡지에서 얻은 평면의 이미지들을 코팅 처리한 뒤 그것들을 반입체적인 방식으로 마치 거대한 부조를 만들 듯이 해서 빼곡하게 배치함으로써 카오스모스 즉 ‘무질서한 질서’를 일구어낸다. 

 

 

 

 

평면의 이미지를 반입체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존재의 위상에 있어서 그 위력을 강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반면, 현실의 구체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의 초상인 중심의 인물은 팝 아트적인 간명한 붓질을 통해 철저히 평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는 카라바조가 금방이라도 살아나올 듯이 실물보다 오히려 더 생생하게 인물들을 묘사한 것과 한껏 대비된다. 잡지에서 가져온 이미지들과 작가가 그린 인물의 대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비대칭적인 이중 처리 방식은 현대인들의 존재가 잡지에서의 이미지들에 비해 오히려 존재의 위력이 약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잡지의 이미지들과 그 이미지들이 지시하는 고급상품들이 중심의 주인공 인물을 쇄도해 들어오듯이 둘러싸기도 하고 아예 묻어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위세를 떨치는 구성을 아울러 고려하게 되면, 상품들이 인간을 압도하는 세상을 실감할 뿐만 아니라, 이미지가 실물을 압도하는 세상을 실감하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존재의 질서가 역전되어 물구나무 서 있는 꼴을 그녀의 독특한 기법을 통해 충분히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물에게 고깔모자를 눈 아래에까지 깊숙이 눌러 씌워 다소 기괴한 형상으로 가공한 것은 한편으로는 맹목성을 함축하면서 짐짓 욕망의 수동성을 의미하고자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설명에 해당하는바 자칫 비예술적인 측면으로 취급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이제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녀는 이 시리즈 작품을 일괄하는 글에서 “이 작품은 100년쯤 후에는 미술관이 아니라 복식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09년의 사람들이 입고 쓰고 사용하는 물건들을 한 화면에 시각적으로 총망라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녀의 이 말은 이번 전시의 <Shopaholic> 시리즈 작업이 이보다 앞서 전혀 다르게 했던 <Reading> 시리즈 작업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여기고자 하는 의도로 읽혀진다. 문자가 지니고 있는 기록에 대한 그녀의 집착을 독특하게 내보이면서 오브제적인 형식으로 한 것이 <Reading> 시리즈 작업이라면, 이번 작품은 사진이 지니고 있는 기록성을 회화적인 형식으로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기록에 대한 이러한 그녀의 집착을 달리 말하면 ‘아카이브적인 충동’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아카이브적인 충동은 지금은 화려하고 위세 등등하지만 언젠가 폐허로 되고 말 것이라는 현실에 대한 폐허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폐허가 먼 미래에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되살아날 것이라는 부활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아카이브적인 충동은 집요하게 생생한 사진이미지들을 끌어 모아 세심하고 꼼꼼하게 재처리하는, 그녀의 전문이라 할 수 있는 ‘편집증적인 작업 방식’과 깊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작품에서 단박 드러나 보이는 관음증적인 관능의 경향이다. 최진아의 <Shopaholic> 시리즈는 이미지와 실물, 상품과 인간, 나아가 이미지와 인간 등의 역전된 이항대립의 관계를 작품의 독특한 처리 기법을 통해 은근히 드러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혹은 아카이브적인 충동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이 묘한 방식으로 결합해서 관음증적인 관능의 분위기를 일구어낸다. 무질서한 듯 구성적인 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상품 사진 이미지들은 전체를 이루면서 그것들이 하나하나씩 지니고 있을 법한 무게를 완전히 상실해버린다. 무엇이든 간에, 각자의 의미를 상실하면서 다른 것들과 덩어리지게 되면 거기에서 관능이 생겨나는 법이다. 다만, 이 관능은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이지 않고 내뱉는다. 그래서 관음증적인 관능에 불과하다. 이 관음증적인 관능은 작품 자체가 하나의 존재로서 우리를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동한다. 한편,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페티시즘적인, 이른바 물신숭배에 의거한 왜곡된 관능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둘을 엮어서 감상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리즈 작업은 차이와 반복에 의거한 심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최진아의 <Shopaholic> 시리즈 작업을 둘러보는 동안 관람자인 우리의 존재가 저 바닥에서부터 어떻게 ‘홀릭’하게 형성되고 있는가를 이미 느끼게 될 것이다.  

 

 

2009 책의 공화국展, 갤러리 한길, 파주 헤이리